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 푯대를 향하여
출처 : 국민일보에서 발췌 (링크 참조)
신약성경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감동적인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신앙의 푯대를 사역의 가시적 성공이나 결과와 혼동할 때가 많다. 교회가 부흥하고 자신의 사역이 인정받고 비전이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푯대인 양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업적을 달성하고자 애쓰는 것을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사도 바울이 푯대로 삼은 것은 눈에 보이는 사역의 성공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느냐를 신앙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분의 부활 권능을 경험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한다. 즉 그가 도달하고자 한 푯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온전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견디며 복음을 전파했고 수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했음에도 결코 자신의 공로나 업적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얻은 것도 온전케 된 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그가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도 부족하다고 여긴 이유는 그가 푯대로 여기는 것이 하늘에 속한 궁극적인 것,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온전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푯대라야 한다. 우리 신앙 여정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더욱 사모하며 바라보는 것이 성도가 향해 달려가야 할 진정한 푯대다. 우리 심령이 변화돼 생각과 가치관, 말과 행실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반면 신앙의 푯대를 사역의 성과나 비전, 목표의 달성에서 찾을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을 더 잘하려다가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뜨린다. 더 효과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이웃의 고통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나 교회 부흥이나 사역과 비전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지기 위한 과정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것들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진정하고 궁극적인 목표에서 이탈하기 쉽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훌륭한 성도의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다. 정확하게는 우리 존재의 온전함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일어날 성도의 몸의 부활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바울 역시 그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해 그분과 하나가 될 그날을 사모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