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에 목회자가 들러리? 기독교 장례 다시 세워야
출처 : 국민일보에서 발췌
거창한 국화 장식과 영정 사진, 유가족의 인맥을 자랑하는 듯한 삼단화환은 없었다. 대신 그곳엔 고인이 마지막으로 신었던 신발과 청진기, 의사 가운이 놓였다. 생전 즐겼던 보드게임과 색소폰, 추억이 담긴 사진들도 함께했다. 가족과 지인들은 고인이 즐겨 부르던 찬양을 연주하고,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낭독했다. 해외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의 안치예배가 드려진 지난 11일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의 풍경이다.
이날 예식은 박 원장의 오랜 친구이자 장례개혁운동을 이끄는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가 ‘임종 감독’을 맡아 진두지휘했다. 송 목사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장례문화에는 온갖 미신적인 요소와 바꿔야 할 악습이 적지 않다”며 “장례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는 자리여야 하는데, 벽돌 찍어내듯 요식행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송 목사의 말처럼 기독교인의 장례임에도 일반인과 구분되지 않는다. 장례의 특성상 경황 중에 갑작스레 치르는 일이 많은데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상조회사나 장례지도사에게 예식을 맡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송 목사는 “장례지도사가 주도권을 가진 이후에는 목회자가 개입하기 어렵다”며 “집례자인 목회자는 들러리가 되고 장례지도사가 예배 시간까지 정해주는 일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인 이진오 세나무교회 목사는 “염습은 위생이나 안전을 고려할 때 전문성 있는 장례지도사가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장례의 보조자이기에 상주가 기독교 장례를 택했다면 이후 절차는 목회자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직업상 장례지도사들은 장례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지만, 목사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장례는 목사의 일이다. 목회 사례비에는 공예배뿐 아니라 결혼식 주례와 장례, 심방에 대한 부분이 포함돼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이 장례의 의미와 절차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5월 이 목사는 SNS에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기독교 장례의 원칙을 밝혀 동료 목회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교회에 요청된 장례는 목사 개인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요청된 일이라는 점, 일반적으로 4번 드려지는 예배(위로 입관 발인 하관 또는 납골) 등을 다룬 글이었다. 이 목사는 “기독교 예배에 지켜야 할 예전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망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망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청중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유가족이 비기독교인이라면 위로라는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면서 복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기독교 전통에서 장례는 결혼과 함께 교회가 감당하던 영역이다. 한국에선 과거 목회자들이 직접 염습을 하기도 했다. 송 목사는 “아파트 문화로 병원 장례식장이 활성화하고 장례가 돈을 버는 업종이 됐다”며 “이 과정에서 목회자는 장례에서 점차 멀어졌다. 멀어진 장례문화를 교회가 다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구 단위로 장례시설을 갖춘 천주교처럼 개신교 교회의 장례예식이 부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