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삶의 방식 (잠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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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8:37
신앙인의 삶의 방식(잠11:1-3)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처세술(處世術)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세술이란 ‘이 세상에서 원만히 살아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킵니다. 서점에는 처세술을 위한 책들이 많이 있는데, 옛날에는 “손자병법”에 관한 책이 유명했습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고,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지만,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결코 용이하지 않기에 이러한 처세방법을 배워야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처세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위해 행동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신앙인다운 삶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신앙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절)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인간은 무슨 행동을 하든지 하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은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의식입니다.
(1) 세상 사람들은 속임을 통하여 성공하려고 합니다.
“속이는 것” 가지고 성공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잠시는 이익이 있으나 오래 가지 못하여 곧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행동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속임수”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은 거짓 행위들이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가짜 기름을 넣고, 미터기를 조작하여 적게 넣기도 합니다. 가짜 식품, 가짜 재료, 가짜...온통 가짜 투성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며, 성공해야 한다는 것에만 정신이 빠져서 “정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2) 신앙인은 거짓 없는 정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16:8)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입이 적더라도 얼마나 정직하게 돈을 얻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공평한 추’란 완전하고 확실한 계산에 의하여 만들어진 도량의 돌을 말합니다. 의인, 정직한 사람은 불량품 도량 기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기 ‘기뻐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의 행위를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는 말들 가운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대하24:2, 25:2)는 말이 많이 나오면서 결론적으로 그들의 삶이 전부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게”(잠14:11)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신앙인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성경에는 겸손과 교만에 대한 이야기와 교훈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겸손하게 사느냐 그렇지 않으면 교만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삶의 과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 교만은 반드시 치욕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처세술에 큰 암초와 같은 요소입니다.
교만은 생각을 통하여, 또는 말과 행동을 통하여, 혹은 어떤 표현을 통해서라도 남을 무시하고, 건방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똑똑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리석고 무식한 행동인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교만한 눈”이라고 했습니다(잠6:16-17).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낮추어 부끄럼을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2) 겸손한 자를 통하여 지혜가 쏟아집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을 낮추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는 조물주를 인정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빌2:3).
▲ 어느 신사가 말을 타고 가는데 군인들이 땀을 흘리며 목재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 한 상사가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신사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함께 목재를 옮기는 수고를 하고 말에 올라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목재를 운반할 일이 있거든 총사령관을 부르게” 그가 바로 총사령관 조지 와싱톤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고 교훈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붙들어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시147:6, 잠3:34).
3. 신앙인은 성실을 삶의 신조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3절)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1) 불성실한 자는 비틀어진 행동을 합니다.
‘패역’이란 이치나 도리에 일부러 어긋나게 행동하며 흉악하여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속이기를 좋아하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사특한 인간들은 진리를 왜곡시키고 도덕적으로 뒤틀린 행동을 일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은 주변 사람들을 실족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의 무덤을 파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정직한 자는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여기 ‘성실’(תמם, 타맘)이란 ‘완전한 것’, ‘표리하지 않는 것’으로 흠 없이 순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성실”이란 히브리어 사전에 보니, “진리와 사실이 전적으로 딱 맞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활 전체가 부합되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어떤 때는 미련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가장 현명한 처세법인 것입니다.
시84:11에는 “여호와께서...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으며, 잠28:18에서는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성실히 행하는 자는 자기 인생길을 성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 미겔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어느 정원의 사원으로 취직하여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 집에 가지 않고 정원 곳곳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꾸미면서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주인이 “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지금까지 일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즐거워서 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인은 그의 성실함과 탁월한 예술 감각이 있는 것을 알고 그를 공부시켜 위대한 예술가가 되게 했습니다.
[ 목회멘토링연구소 김성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