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지명 - 다시스 Tarshish
안녕하세요. 오늘은 구약 성경 지명 원어 설교문 중에서 다시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다시스 Tarshish
1. 지명과 위치
1) 명칭 : 다시스(히-תרשיש(타르쉬쉬), 영-Tarshish)라고 불리운다.
2) 의미 : 금속의 '정련', '전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특히 산스크리트어(Sanscrit)나 아리안어(Aryan)로는 '해변'(the sea coast)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위치 : 다시스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이견이 있다. 첫째 주장은 스페인 남부 지브랄타(Gibraltar)에 가까운 타르테수스(Tartessus)로 추정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이 의견이 지지를 받고 있다. 둘째는 이탈리아의 서쪽 섬 타르시스(Tarshish)라는 주장이다.
2. 성경적 배경
1) 다시스는 야완의 아들이며 노아의 증손자이다(창10:4이하).
2) 베냐민 지파 빌한의 아들이다(대상7:10).
3)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 한 곳이다(욘1:34:2).
4) 아하수에로 왕을 섬겼던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중 한 사람이다(에1:14).
5) 솔로몬이 자기의 다시스 배들을 보낼 때 두로 왕 히람의 노련한 선원들을 요청했다(왕상9: 26;10:22).
6) 다시스의 배들은 지중해와 홍해에서 해상 무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겔27:25사2:1660:9).
3. 역사적 변천
1) 원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주전 11세기경 개발되었다.
2) 철, 은, 동, 납 등 광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이었다.
3) 지중해 해상 무역항으로 미항이었다.
4) 주전 7-6세기 헬라의 여러 섬들과 무역이 성행했다.
5) 주전 500년경 카르타고(Cartago) 사람들에 의해 멸망당했다.
6) 로마 제국의 유명한 세 황제인 트라얀(Trajan)과 하드리안(Hadrian), 테오도시우스 1세(The first Theodosius)가 스페인 출신이다.
4. 고고학적 발굴
1973년 사르디니아(Sardinia)에서 발견된 주전 9세기경의 '페니키아 비문'에는 다시스가 섬으로 언급되어 있으며 그곳에 금속 제련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원어설교 : 다시스 Tarshish
다시스 히 תרשיש : 타르쉬쉬 영Tarshish
욘1:3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타르쉬쉬는 '금속의 정련' 혹은 '보석'을 뜻합니다. 보석 중에서도 벽옥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요나서에 언급되어 있는 이 지명은 욥바에서 배를 타고 갔었던 것으로 미루어 지중해나 대서양 연안에 위치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남부 대서양 연안에 있었다가 오래전에 폐허가 된 고대 도시 타르테수스와 동일한 곳으로 보기도 합니다.
1. 다시스는 금속의 정련을 뜻하며 신앙에는 연단이 따릅니다.
금이나 은은 뜨거운 용광로에서 단련됩니다. 그래야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가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순도를 높이시고자 사용하시는 도구는 바로 연단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신앙에 따르는 시험이나 고난을 불평한다든지 낙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므로 그분이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시험하고자 오는 시련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권고합니다.
그 이유는 이 일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의 영광에 참여케 하려고 이와 같은 시련을 주시는 것이므로 불평은 합당치 않다는 말입니다. 인격이든 신앙이든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도구로 끊임없이 단련되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2.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혹자는 예수의 십자가를 과소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를 바꿔 놓는 대사건이었고, 우리 각 사람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주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죄의 착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사망에게 매어 종노릇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참으심으로 우리가 참 자유를 얻었으며, 죄의 노비 문서가 소각된 것입니다. 시련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주님께서 주셨다면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주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고자 하다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잘못을 범하여 어려움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고통인 게 분명하나 내가 져야만 할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면 십자가의 무게가 비록 중하다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인내하는 자가 약속에 참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이유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히10:36). 아무리 큰 은사와 능력이 있었다 해도 약속에 참여하지 못하면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기회가 자주 주어져도 이를 충분히 활용치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날 때에 참아내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다수가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꿈을 가지고 출발했던 사람들이 중도에서 실패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인내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내할 줄 모르면 누구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피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의 인내는 하나님의 보상이라는 값진 열매를 얻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