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과 이세벨
아합과 이세벨(Ahab and Jezebel)은 북 이스라엘의 제7대 왕과 왕비로, 온 나라를 우상 숭배에 빠뜨린 인물이다.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한 뒤 바알 숭배에 앞장섰으며,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다. 또한 두 사람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기 위해 계략을 꾸며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탈취했다.
성경은 아합이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했다고 기록했다.[1] 아합과 이세벨은 슬하에 아하시야, 여호람 두 아들과 딸 아달랴를 두었다. 수많은 악행의 결과로 두 사람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의 집에 속한 모든 이들이 멸절을 당하여 아합 왕가는 몰락했다.
시대적 배경
가나안과 인근의 많은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만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다수의 신을 믿고 숭배했다. 대표적인 우상이 바알과 아세라다. 바알은 곡물, 과실, 가축 등의 결실 및 성장을 주관하는 신이고, 아세라는 가장 강한 신으로 알려진 '엘'의 아내로 바알을 포함한 70여 신의 모신(母神)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그들의 다신교 사상에 동참할까 염려하시어, 그 땅에서 행하는 각종 우상 숭배를 주의하라 말씀하셨다.[2][3][4] 하나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왕국의 분열 이후 북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으로부터 본격적인 우상 숭배가 시작되었다. 우상 숭배의 악행이 극에 달했던 시대가 아합왕 시대였다.
주요 사건
바알과 아세라 숭배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은 시돈(페니키아)의 왕인 동시에 바알 종교의 제사장이었다. 시돈의 공주였던 이세벨은 북 이스라엘의 왕비가 되어 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심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한편,[5]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은 보호·육성하며 적극 지원했다.[6]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산당과 제단을 만들어 바알 숭배에 앞장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섬겼다. 이에 온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죄까지 더하게 되었다.[7]
엘리야의 책망과 갈멜산 대결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북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지자,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 그를 책망하며 "내 말이 있을 때까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슬이나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8] 그 후 북 이스라엘은 기근과 가뭄에 시달리게 됐다.[9]
3년 넘게 나라 전체가 심각한 기근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이 가뭄을 끝내시기 위해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셨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데려오라고 했고,[6] 여호와의 이름과 바알의 이름으로 각각 제사해 어느 신이 불로 응답하는지를 통해 참 신을 가려내자고 제안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규례대로 칼과 창으로 스스로를 찔러 피를 내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바알 신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반면 엘리야는 도랑에 물을 부어 도저히 불이 날 수 없는 환경까지 만들었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태웠고 도랑에 있던 물까지 말려버렸다.[10]
이를 본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시인했고,[11]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잡아 처형했다.[12] 그런 뒤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니 3년 6개월 만에 이스라엘에 단비가 내렸다.[13][14]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세벨은 회개하기는커녕 엘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15] 이에 엘리야는 40일을 이동하여 호렙산으로 도망쳤다. 이세벨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엘리야를 죽일 수 없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카스파르 라위컨(Caspar Luiken), <나봇의 포도원에서 아합을 꾸짖는 엘리야>, 1712
이스르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나봇은 아합의 왕궁 근처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합은 그곳을 자신의 나물 밭으로 삼고 싶어했다. 하지만 포도원을 팔라는 아합왕의 제안에도 나봇은 조상의 유산을 파는 일을 금하신 하나님의 뜻을 언급하며 거절했다. 아합은 마음이 무척 상해 침상에 누워 식음을 전폐했다.[16] 이 상황을 알게 된 이세벨은 나봇에게서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17]
이세벨은 먼저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들을 사주해 나봇을 높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건달 두 사람에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했다. 이는 어떤 사람을 정죄하려면 두세 증인의 증언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악용한 것이다.[18] 졸지에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로 모함받은 나봇은 백성들에게 끌려가 돌에 맞아 죽었다.[19]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내려갔다.[20] 그곳에는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아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야는 그에게 아합과 이세벨의 처참한 죽음을 예언했다.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고,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21]
아합의 죽음
율리우스 슈노르 폰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아합의 죽음>
아합과 이세벨은 딸 아달랴를 남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켰다. 아합은 많은 양과 소를 잡아 북 이스라엘을 방문한 여호사밧을 성대하게 맞았다. 그리고 아람 자손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함께 정복하자고 권했다.[22] 그의 제안에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23] 아합은 선지자들을 불렀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은 아합이 승리할 것이라 예언했지만[24]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했던 선지자 미가야는 이번 전쟁을 통해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25] 미가야의 경고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합은 그를 옥에 가두고 출정을 강행했다.[26]
아합은 적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왕복을 벗고 일반 군사의 옷을 입었다. 대신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그대로 입고 출전하게 했다.[27] 전쟁이 시작되자, 아람 왕은 부하들에게 이스라엘 왕만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28] 이에 적들의 공격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고, 여호사밧을 쫓던 아람 장수들은 이내 그가 아합이 아님을 알아보고 추격하기를 포기했다.[29]
한편, 위험을 피해 일반 군사로 변장했던 아합은 누군가가 우연히 쏜 화살을 맞았다. 전쟁의 기세가 맹렬하여 아합이 탄 병거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결국 아합은 피를 많이 흘려 죽음에 이르렀다.[30]
부하들은 그의 피가 흥건히 고인 병거를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씻었는데, 그때 개들이 몰려와 그 피를 핥았다. 엘리야가 대언한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31]
이세벨과 아합 왕가의 최후
이스르엘 창밖으로 떨어져 죽은 이세벨
아합이 죽은 뒤 그의 첫째 아들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자녀 없이 2년 만에 중병이 들어 죽었고, 동생 여호람이 다음 왕위에 올랐다. 그때 아합왕의 군대장관이었으며, 당시 여호람을 섬기던 예후가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아합의 온 집안을 멸망시키라는 사명을 받았다.[32]
이에 예후는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여호람을 죽이고, 아달랴의 아들 유다 왕 아하시야와 이세벨, 아합의 아들 70명과 아합 집에 속한 자들을 멸절시켰다.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이스르엘에서 창밖으로 떨어져 죽었는데, 개들이 와서 이세벨을 뜯어 먹어 시신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33]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제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의 반란으로 살해당하자, 스스로 남 유다를 통치하고자 그 길에 걸림돌이 되는 유다의 왕족들을 모두 죽였다.[34]
이때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만이 고모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35]
6년간 남 유다를 다스리던 아달랴는, 즉위 7년째에 일어난 여호야다의 반정으로 백성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36]
아합 왕가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달랴가 죽음으로써 우상 숭배와 악행을 일삼았던 아합 왕가는 완전히 멸절되었다.
아합과 이세벨의 예언적 의미
아합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의 왕이었고, 이세벨은 바알, 즉 이방 신을 섬기던 나라의 공주였다.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한 뒤,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에 빠졌다. 이는 장차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바알, 곧 태양신[37] 숭배 사상을 받아들일 것에 대한 예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요한계시록 2:20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며 교회는 차츰 태양신교의 규례를 받아들였다. 321년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되며 모든 교회는 안식일을 버리고 일요일을 지키게 되었고,[38]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교회에서 새 언약 유월절이 폐지되었으며,[39] 354년에는 태양신 미트라의 축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켜지게 되었다.[40]
또한 431년에는 교회 예배당에 십자가가 도입되는 등[41] 이교도의 규례가 교회로 밀려들어 왔다. 진리를 지키려는 성도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불법은 더욱 널리 퍼져 결국 예수님이 세우신 새 언약 진리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16세기에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교의 부패를 비판하며 개혁하고자 일어났다. 그로 인해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등 여러 종파로 나뉜 개신교가 등장했다.
그러나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구원의 진리는 찾지 못했다. 이들은 기존 교회가 받아들였던 이방 종교의 풍습인 일요일 예배, 십자가 숭배 등을 현재까지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42] 성경의 예언대로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다.
교훈
성경은 아합에 대해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악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킨 자라고 기록했다.[1][7] 그런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전체를 우상 숭배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아합왕 이후 북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남 유다에서도 여호람, 아하시야, 므낫세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이 많이 등장했다. 성경은 그들이 "아합의 길로 행했다"고 평가했다.[43][44][45]
아합과 이세벨을 비롯하여 우상 숭배의 길을 걸었던 이들은 전부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46]
이는 하나님을 저버린 우상 숭배 행위는 축복이 아닌 저주의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 신명기 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