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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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나 예수의 보혈, 심지어 사랑에 관한 말씀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관한 교리이다.
- 성경학자 케논 호이트 -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반복하여 예언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강조한다. 신약성경에서 재림에 관한 성경구절은 318회나 등장한다. 이는 25절마다 한 번 꼴로 기록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21차례 정도로 재림을 언급하셨다.
그런 점에서 신약성경 안에 예수님의 재림이 언급되지 않은 곳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재림의 약속이 없다면 성경의 결론이 없을뿐 더러 역사의 마지막도 없는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마지막 약속과 이에 대한 성도의 응답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요한계시록 22장 20절 -
마라나타
'성경의 모든 것을 증언하신 예수님’ 께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이에 대해 성도들은 ‘아멘’이라 외치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쁨으로 화답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특별히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은 간절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늘 기억하기 위해 ‘마라나타’라는 인사말을 사용했다.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란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말은 초대교회의 성찬예식에서 공식적인 기도문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낯선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림’을 강조해야 한다. 흔히 복음을 전할 때 ‘십자가 사건’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복음이란 스토리의 절반만 언급한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통해 완성되는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말한다. 구속사건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삶,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사건이다.
구원의 약속과 성취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성취는 종말의 날까지 단계적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마지막의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들의 믿음은 ‘이미 죄 용서를 받았으니 이 땅에서 감사하며 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믿음의 본질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찬 폭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바라보며 슬픔과 비탄에 빠지고, 그 죄인들을 사랑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이 세상이 받을 심판을 대신 지셨던 진정한 메시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이단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의 사건이 왜곡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천년 동안이나 재림을 기다렸지만 아직도 오고 계시지 않는다며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무시되었던 시대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부패하였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교회와 성도는 언제나 건강한 신앙으로 부흥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재림을 설교하지 않는 이 시대는 위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설교할 때이다. 어린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게 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